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정진호
약의 역사는 길지만, 내가 믿고있는 진실들이 등장한지는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신약의 등장, 광고와 마케팅, 약의 대중화, 나타나는 부작용, 새로운 임상실험, 새로운 약의 등장... 약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내가 종종 먹는 약들은 그 과정의 어디쯤인지 궁금해졌다. 타이레놀의 안정성은? 항생제 과용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고치지 못하는 의료계는? 그 부작용은 언제쯤 나타날까?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하기위해 우리는 어디쯤 와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면 저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요?
책을 읽으면서 약이라면, 슈퍼푸드라면, 전문가의 말이라면 뭐든지 너무 쉽게 믿어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정보가 있고, 대부분은 눈을 감고 있어도 알게되는 것들이다. 나는 한번도 아사이베리를 검색한적이 없지만 그 효능은 알고있다. TV에 자주 등장하는 슈퍼푸드인데다, 그런 방송을 할 때라면 으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곤 하니까. 그러면 미디어에 등장하고 전문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식품들이 정말로 우리 몸에 좋은 역할을 할까?
과거 외과수술 성공률은 매우 낮았다고 한다. 의사들이 소독과 위생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연시 되는 소독과 위생의 중요성이 학계의 정설이 된 것은 19세기였다. 그 전까지는 의사들이 소독과 위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왔던 것이다. 말인즉슨, 지금은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해도, 나중에 보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기로 했다. 위대하고 위험한 약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약이 인간의 생활을 매우 많이 바꿨다. 이 하나를 뽑을 때도 마취를 하는 지금, 마취제 없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나 팔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불과 몇 세기 전 29세였던 인간의 평균 수명이 곧 90세를 바라볼 정도로 늘어났다. 모두 약의 대중화, 의학과 도시 위생의 역할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병들도 점차 무릎을 꿇었다. 모두 위대한 약의 공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이 모든걸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부작용을 감내하고 먹어야 하는 약도 있고, 정작 몸에 별 영향을 주지않는데도 마케팅의 효과로 날개돋힌듯 팔려나가는 영양제들도 있다. 과한 항생제 복용이 내성을 생기게한다는 것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문제다. 스테로이드의 과도한 사용은 오히려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약이 이렇게 위험하기도 하다. 그럼 약을 어떻게 쓰냐고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약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알고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하게 불신하지도, 의존하지도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약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비전문가들이 약에 대해 과도한 믿음을 가진 것은 무엇인지, 그러면 올바른 약 사용을 위해 국가와 개인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설명해준 책이다. 그 밖에도 약의 역사와 인류에 미친 영향에 관해 흥미로운 내용도 정말 많고, 여행시 갑자기 탈수증이 왔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등등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팁들도 많다. 정말 꽉 찬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