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렌치파이
냉소에 대하여 본문
나는 가끔 냉소적이다. 머리는 그렇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엄청 차가운 태도로 생각할 때,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느낄 때마다 내가 싫었다. 난 왜 이 모양이지? 왜 항상 팔짱끼고 비웃을 준비부터 하지? 스스로 물어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작년에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엥? 무슨 고생을 하려고 벌써 결혼을 하냐?'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요즘은 결혼을 늦게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으니까. 결혼해서 불행하다는 글이 넘쳐나고, 이혼율도 너무너무 높으니까. 먼저 든 생각을 뒷받침하려는 심산인지 머릿 속에 어디서 주워듣고 본 기사들이 몽땅 모였다. 그리고 '참~좋겠다. 난 결혼 안해야지.'하면서 친구의 결혼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아직 결혼도 안해봤고, 결정적으로 내 주위에는 아직 결혼해서 불행한 사람이 없다. 근데도 굳이 냉소적인 태도로 친구의 상황을 대하는 나를 보면서 '난 진짜 뭐가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끄기의 기술>에 냉소와 독설에 대한 문단이 있다.
무심한 사람은 나약한 겁쟁이다. 사실 무심한 사람은 너무 많은 일에 신경이 쓰여서 무심한 척 하는 것 뿐이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할지 신경쓰여서 냉소와 독설 뒤로 숨는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은 세상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문제를 가진 특별하고 유별난 유리같은 존재로 상상한다. 그래서 절대로 의미있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무감각한 잿빛 수렁에 숨어 자아도취와 자기연민에 빠진 채,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가는 삶이라는 불쾌한 것을 끊임없이 외면한다.
이 부분을 읽고 머리가 띵 했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철딱서니 없고, 요즘은 오글거린다고 배척 당하는 싸이월드 감성글귀를 보는 것도 좋아했다. 시인이 되고싶었고 작가가 되고싶었다. 영화도 잔잔한 일본영화를 좋아했고, 심하게 낙천적이었다. 근데 고3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참 감사한 선생님 덕분에 그 사실을 전교생이 다 알게됐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학교에 가서 내가 울면 주위에서 나를 불쌍하게 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웃으면 생각 없는 애처럼 보일 것 같았다. 계속 작가가 되고싶다고하면 친척들이 철없는 소리한다고 비웃을 것 같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전문직을 가지려고하면 니 주제에 무슨 의사를 꿈꾸냐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제나 항상 무난한 선택을 했다. 무난한 학교, 무난한 과, 무난한 학교생활, 무난한 직업.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그냥 그런 선택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많은 걸 신경쓰게되었다. 너무 많은 걸 신경써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괴로운 가족사 앞에서도 시큰둥하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겁없이 도전하는 멋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왜 굳이 저런 고생을 사서하는거야 하면서 비웃음을 지었고, 괴짜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렇게 냉소적인 태도가 습관이 되었다.
자아도취와 자기연민에 빠져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으면 그걸 잃어서 괴로울 일이 없고, 누구와도 사귀지 않으면 이별할 일이 없으므로 슬프지 않다. 나는 아빠와 영원히 이별하면서 내가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헤어지기 싫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많이 신경쓰다보니 설명이 필요한 일에는 그냥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마저 비웃음을 살까봐 내가 먼저 큰소리치고 먼저 비웃었다.
되돌아보니 냉소는 습관이었다.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무엇에 마음을 쓰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피하고 싶어하는지 느끼고 있다. 피곤할 정도로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나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새로운 태도가 또 습관이 되어 변할 것이다. 웃고 싶으면 웃고, 좋아하면 좋아하고. 막연한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도록 다독이면서 나에게 의미 있는 선택을 찾아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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